
마이너스
5학년
보텐햐쿠텐
1학년들이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헤이스케에게 전해 들었다. 우리 중에 1학년과 친한 사람은 헤이스케밖에 없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이유는 없지만, 단체방도 있고, 자주 만나서 노는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체방에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하나씩 보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들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맛있는 거 사갈게요, 감사합니다, 머리 손질 잘해, 돌아가고 싶어요. 등등 이상한 잡담들이 여러 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심심했나 봐. 이 상황에도 머리 손질 잘하라는 사이토씨의 말에 괜히 무서워졌다.
점심시간에 되어서 모두와 함께 운동장에 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같이 축구를 하자는 친구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의 두부와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주야장천 들어야만 했다. 라이조는 도서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없어서 나와 사부로가 두 사람의 열띤 토론을 들어줘야만 했다.
시간은 그렇게 오래 흐르지 않았다. 막 선제골이 들어가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그 순간, 다른 소리가 겹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정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큰 개가 인간을 무는 일은, 어떤 곳이라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은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안 가 바로 사라졌다. 이곳은 도시였고, 도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는 없을 것이었고, 내 눈에 보이는 장소 모두가 개나 고양이 할 것 없이 사람을 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도망가!!!”
바로 근처에 있던 큰 개가 사람의 팔을 뜯어 물고 우리 쪽으로 시선이 옮겨지자마자 소리쳤다. 운동장에서 들리던 축구에로의 환호성이 처절한 고함으로 바뀌게 된 것은 삽시간의 일이었다. 헤이스케들은 내 고함에 바로 안으로 들어갔지만,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개에게 목을 물어 뜯겼고, 한 마리의 개가 여러 마리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혼비백산으로 아이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교문을 닫기에는 시간이 많이 늦었고 건물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개들로 정신이 없었다. 1층은 쑥대밭이 되어갔고 사부로는 라이조를 찾으며 도서관을 향해 뛰어갔다.
“어, 어떡,”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서 헤이스케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였고 바로 들려온 이름에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1학년들 중에 사이토씨였다. 들리는 소리로는 그곳도 상황이 좋지 못하고 한 건물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얘들아, 갑자기 왜 그래!”
“그런 걸 묻기 전에 위로 올라가!!”
건물로 들어온 동물 중에 하치자에몽이 학교에서 돌봐주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치자에몽과 헤이스케를 잡아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물함과 소파, 등등의 여러 가지 물건으로 위층을 막으려는 것의 위를 뛰어넘어 올라갔다.
“1층은 어떻게 됐어?”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막고, 문을 막았다면 아마 교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살았겠지만, 복도는 이미 시체밖에 없었다. 하지만 2층은 거의 무사했다. 동물들도 올라오지 않았고, 다친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심한 아이들이 없었다. 이상함을 깨닫기에는 쉬웠다. 옷에 피를 묻힌 아이들은 많았지만 다친 아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헤이스케와 하치자에몽을 데리고 많은 아이가 모여있는 곳에서 떨어졌다.
“칸, 칸에몽 어쩌지. 얘들이..”
“하치자에몽, 진정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미쳐 돌아간다는 건 알잖아?”
“...칸에몽..”
“그리고 곧 끝날 거야. 일단은 지금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라이조랑 사부로도 무사할 거고...”
동물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더는 말을 할 수 없었고 하치자에몽도 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곧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정부가 움직이겠지. 개와 고양이들만이라면, 이 상황은 빠르게.... 빠르게 진압될 거라고.
무심코 바라본 학교 바깥의 상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개와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새들까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어떤 집에서 키웠는지 모를 뱀들까지 거리를 나와 활보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손으로 가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화를 아직 끝내지 못한 헤이스케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길래 억지로 잡아끌었다.
이 상황이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 지옥일까. 마을 곳곳에 돌아다니는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광경을 보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부가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동물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움직이기 전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도 알 수 없었다. 개와 고양이뿐만이 아니다. 새와 뱀, 사냥본능을 가지고 있는 육식동물들이 떼를 지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아, 내 시선은 잠깐 하치자에몽에게 머물렀다가 고개를 틀어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깥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죽음을 목전에 둔 지옥이라면, 이곳은 잔잔한 태풍의 눈이었으니까.
1층을 제외하고 모든 교실은 안전했다. 물론 1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물건은 빗자루와 밀걸레가 다였다. 살아남은 대다수 아이는 1층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려갈 생각이 있는 건 우리처럼 1층에 친구들이 있는 아이들 뿐일 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일 것이다. 우리는 빗자루와 밀걸레를 챙겨 들었다. 하치자에몽은 영 내키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어야만 했다.
“잠깐, 너희 뭐 하려는 거야?”
“1층으로 내려가려고.”
“내려간다고?! 지금 거기가 어떤 상황인지 알아?!!”
“알아. 아니까 빗자루랑 밀걸레도 챙기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는 모두 감이 좋은 편이었다. 막 올라왔을 때는 두 사람 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만 이상한 점을 눈치챘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도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이 층의 아이들은 상처가 별로 없다. 심한 상처는 대체로 긁힌 상처들이었고 그 상처들은 대체 손톱자국이었다. 더 이상의 결론은 무의미했다. 이 정도 생각만 하면 결론을 짓지 않아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너희들이 그걸 가져가면 우리는!!”
“다른 교실에도 있잖아.”
“너희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면 어떡하라는 건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헤이스케랑 하치자에몽에게 계단으로 향하라고 손짓하고는 소리치고 있는 애를 내버려 두고 그대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우악스럽게 어깨를 붙잡혀 뒤로 잡아당겨졌다.
“칸에몽!”
뒤로 넘어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질금 감았다. 몸에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넘어지며 들려야 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히 눈을 뜨면 나나마츠 선배가 내 몸을 받치며 나를 잡아당겼던 아이의 손목을 강하게 그러쥐고 있었다. 험악해진 인상으로 잠시간 그 아이를 보고 있더니 언제나처럼 방긋거리는 미소로 나를 보며 말했다.
“1층으로 내려갈 거지? 같이 내려가자. 토메사부로랑 이사쿠도 있어!”
“칸에몽 괜찮아~?”
뒷문으로 이사쿠 선배가 고개를 내밀며 내 상태를 살폈기에 나나마츠 선배의 품에서 나오며 괜찮다고 말했다. 밖으로 나와보면 케마 선배가 하치자에몽이랑 헤이스케의 상태를 보고 있었다. 너흰 다친 곳 없냐는 질문에 칸에몽 덕분에 살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나마츠 선배가 교실에서 나오며 이미 시오에 선배랑 타치바나 선배는 1층으로 내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 거의 쓸어버린 거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하치자에몽의 표정이 굉장히 슬퍼 보였다. 이사쿠 선배는 조용히 하치자에몽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내려갈 애들은 우리 밖에 없는 건가.”
“내려가기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애들이 더 많을 것에요.”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는 게 더 괜찮겠네. 나랑 이사쿠는 보건실로 향할 거야. 너희들은 코헤이타랑 같이 도서실이지?”
“...네..”
하치자에몽의 상태를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우리는 학교 건물 바깥에 있었고 학교 건물 밖은 시체들로 널브러져 있었다. 까마귀들이 그 시체를 뜯어 먹고 있고 뱀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에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런데 보건실에는 왜 가요?”
“구급상자 가지러. 위층에는 다친 애들이 없겠지만 1층에는 많은 거 아니야? 그거 때문에.”
“시오에 선배랑 타치바나 선배는 어디로 가신 거예요?”
“걔네 둘은 건물 안에 있는 창고로 향했어. 밖에 있는 창고보다는 아니지만 쓸만한 물건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야. 코헤이타가 대신 가도 괜찮았겠지만 다 부셔 먹을 거라면서 금지당한 거야.”
“아아~”
그럴 만 하지. 이해했다. 나나마츠 선배는 체육위원회 위원장인데 건물 내의 창고는 체육 창고이기 때문에 뭐가 있는지는 선배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이 선배가 도서실행인 건 역시.. 넘쳐흐르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이었군.
“난 간혹 오하마가 너무 긴장감 없다고 생각해.”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그래요.”
헤이스케의 등짝을 빗자루로 친 다음에 조심히 사물함을 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동물들은 질렸는지 계단에는 없었다. 아니면 선배들이 이미 쓸어갔나.. 케마 선배가 넘어오며 위험하게 마음대로 넘어가지 말라고 한마디를 했다. 그 뒤로 하치자에몽이 넘어오고 주위를 살피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조용하네….”
“아아….”
선배, 천천히 예요. 알고 있어! 사물함 뒤에서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쿠 선배가 조심히 넘어오는 것을 케마 선배와 나나마츠 선배가 부축하고 그 뒤로 헤이스케가 가뿐히 넘어왔다.
조심히 계단을 내려가 1층 내부를 살폈다. 동물들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어딘가 아파 보였다. 시오에 선배가 팬 건지, 타치바나 선배가 팬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뒤에서 하치자에몽이 타치바나 선배.. 라고 중얼거렸다. 시오에 선배가 마음이 좀 여리긴 했지.
개가 몸을 돌리는 순간 나와 시선이 맞았다. 맞는 순간 아까까지 비틀거렸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케마 선배가 밀걸레로 옆으로 날렸다. 앞으로 뛰어! 뒤에서 이사쿠 선배가 소리치자 나와 하치자에몽, 나나마츠 선배는 도서실로 뛰었고 그 반대편인 보건실로 케마 선배랑 이사쿠 선배, 헤이스케가 달리기 시작했다.
도서실 문 앞에 여러 마리의 개와 고양이들이 짖으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주위에 널브러진 뼈가 보이는 시체들을 발로 채며 입구를 막는 동물에게 빗자루를 휘둘렀다. 깨갱거리는 소리에 괜스레 하치자에몽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지만, 하치자에몽도 입구를 막는 동물을 향해 밀걸레를 휘두르고 있었다. 도서실 문이 열리자 나와 하치자에몽의 목덜미를 나나마츠 선배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쵸지!”
“코헤이타”
셔츠에 목이 눌렸어.. 켈록 거리도 있으면 옆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도서실에 몰려 있는 것 같았다.
“너희 괜찮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숨을 정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사부로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대로 뒤로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한 번 흔들어주었고 뒤로 라이조가 걸어왔다.
“사부로, 상처 벌어지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이 정도는 가벼우니까 괜찮아. 나보다는 나카자이케 선배한테 움직이지 말라고 해줘. 나보다 심하니까.”
“다쳤어?!”
하치자에몽이 놀라서 몸을 팍하고 들었다. 당황이 많이 묻어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사부로와 나카자이케 선배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괜찮아 바보야. 진정해.”
“헤이스케는 어디 가고 너희 둘만 왔어?”
“헤이스케는 케마 선배랑 이사쿠 선배랑 같이 보건실로 달려갔어. 원래 같이 올 생각이었는데 뒤에서 보다가 거기로 달려간 거 같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제야 주변 상황이 대강 보이기 시작했다. 다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사서 선생님은 계시지 않은 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의는 거의 찢어졌거나 상처를 막는 것으로 쓰기 위해 입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더 살펴보았다. 라이조는 어깨에 상처가 있었고 사부로는 허리와 다리에 상처가 있었다. 사부로 쪽이 더 심한지 찢은 교복으로 대강 피가 흐르지 않게 막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나카자이케 선배였다. 허리 쪽 상처에서 자꾸 피가 흘러내렸다.
“여기에 보건위원회 없어?”
“있는데.. 저게 최선이었어.”
자동으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고 여기에서 몇 명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사부로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나카자이케 선배 상처가 사부로 상처로 보일 정도였다.
“..무슨 일 있어?”
“......... 아까, 나카자이케 선배 말대로 라디오를 들었거든.”
“응”
“.......외국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나 봐. 우리 쪽에 손을 쓸 틈이 없데. 동물원은 괴멸돼서 동물들이 빠져나와 시내를 활보하고 있고, 산에서도 야생동물들이 내려와 민간인을 공격하고 있데. 군인들도 힘을 쓰고 있긴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사부로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말의 의미는 확실했다.
정부는 괴멸했고, 우리는 여기에 버려졌다.
일단은 살아야지. 그것이 우리의 최소이며 최종 목표였다. 일단은 살아남기. 어떻게 해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우린 많은 말을 아꼈고, 많은 말을 삼켰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인된 생사는 1학년까지만 이었다. 중학교 3학년의 아이들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고, 닿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불안한 건 하치자에몽의 친한 후배들이었다. 돌보고 있는 동물들은 제각각 달랐지만 이가사키는 독을 품고 있는 생물을 많이 키우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연락이 없는 이상, 죽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 아까 사이토씨랑 연락했었지. 거긴 괜찮데?”
“...대부분의 아이가 죽었고, 뿔뿔이 흩어졌데. 다행히 다섯 명은 흩어지지 않고 같이 있긴 하지만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묶여있다나 봐. 그리고, 연락이 안 돼. 통신이 끊겼어.”
헤이스케는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우리도 핸드폰을 들었다. 전파는 끊겨 있는 상태였다.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을 이렇게 쉽게 보여주는 물건이 바로 옆에 있던 거다.
“하지만 라디오가-”
사부로가 말을 이어나가려는 순간 위에서 큰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빠르게 소리는 줄어들었다. 이 학교는 이제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얼마 있지 않아 도서관의 문을 열고 이사쿠 선배와 케마 선배, 창고로 향했다던 타치바나 선배와 시오에 선배가 들어왔다. 아까 고함이 들려서 위를 확인해봤는데 큰 독뱀들이 위층을 휩쓸고 있다고 했다. 뱀이라는 소리에 하치자에몽이 핸드폰을 꽉 쥐었다.
“그 녀석들, 언제 여기로 내려올지 몰라. 여기서 빨리 나가야 해. 이런 좁은 곳에서는 도망치기도 어려워.”
심한 상처들은 이사쿠 선배가 가볍게 손을 보기로 했다. 일단은 밴들을 피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빠져나가기 위해서 무기를 챙기고 있을 때 나가기 싫다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사람이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자기는 죽기 싫다며,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가족을 보고 싶다고, 왜 연락이 되지 않느냐고, 정부는 손을 쓸 수 없는 새에 사라졌고, 군도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생각보다 상황이 삼각했다. 사부로가 라디오에서 들은 상황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살고 싶으면 일어나.”
이사쿠 선배가 눈치를 보고 있으려니 이사쿠 선배는 도서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로 케마 선배와 나나마츠 선배가 걸어 나가고 사부로와 라이조도 걸어 나갔다. 이사쿠 선배는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을 확인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나갔기에 우리도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하치자에몽이 그곳에 멍하니 서 있다가 움직였다.
...
얼마나 걸었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많은 사람이 줄어들었다. 그저 학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동물들을 피해 달아 다니거나, 갑자기 공격하는 사람들을 피하거나. 지옥을 만드는 것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동물들일까, 이 상황에 미쳐버린 사람들일까. 나는 후자인 거로 생각한다.
이사쿠 선배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의 상처를 봐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건물 밑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처를 보고 있는 이사쿠 선배를 보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헤이스케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연락이 안 되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헤이스케에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아,”
누군가의 짧은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곧 무슨 소리인지 알아낸 것은 한순간의 찰나였다. 수많은 건물 파편들이 아래로 추락하고, 햇볕을 피하고 있던 수많은 사람을 깔아뭉갰다.
“이사쿠!!!!!”
지옥같은 정적을 깬건 타치바나 선배였다. 눈에 띄게 당황한 타치바나 선배가 짐들도 내팽겨치고 무너진 건물을 향해 뛰어가는 것을 나나마츠 선배가 붙잡았다. “안돼 센조, 동물들이 몰려와!!!” 그 말에 우리들의 서신의 끝에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동물들이었다. 젠장, 낮게 읊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떨어진 짐들을 챙기고 정신을 차리지 못 한 사람들도 다친 사람들을 부축해 달아났다.
그렇게 선배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숨이 막히게 조용한 적은 없었다. 최소한 견원지간인 두 선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나마츠 선배의 밝은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삭막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공기였다. 도망치는 도중에 타치바나 선배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심하게 당황한 케마 선배가 뒤이어 따라온 동물에게 다리를 물려서 상처가 심했다. 구급상자는 이사쿠 선배와 함께 깔렸고 우리들은 동물무리에게 쫒겼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거의 해진 천 뿐이었다.
나무막대와 천으로 대충 케마 선배의 상처를 막았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최소한의 잡다한 지식만 있을 뿐 이사쿠 선배처럼 전문적이지 않았다.
다친 사람들은 쉬기로 하고 멀쩡한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로는 동물들은 눈에 잘 안 띈다는 것, 의외로 바로 공격하지 않는 점, 무리로 움직이는 것. 자기들끼리도 싸우기도 한다는 점. 오래 쫓아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를 쫓아온 그 무리는 원래 그 곳에 있다가 다른 곳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중이었을 가능성이 컷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와 나나마츠 선배, 하치자에몽, 사부로와 몇 명 사람만 주위를 돌아보기로 했다. 학교를 처음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정말 무기처럼 생긴 것들을 들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끼익, 귀에 걸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 곳은 복도였다. 조용히 시오에 선배의 손짓으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이 당분간 우리가 지낼 안식처가 될 것이다.
방 하나하나는 말끔했다. 원래는 어떤 회사였는지 사무실이 전부였지만 지내기에는 괜찮았다. 짐들을 한 쪽에 풀어 두고 사람들 보고 거기서 쉬라고 하고 나와 하치자에몽, 나나마츠 선배, 멀쩡한 사람 몇 명은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동물들 없겠지..?”
“나야 모르지.”
끼익,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문을 열고 주변을 뒤지고, 또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달려!!” 누군가의 외침이었는지 모른다. 하치자에몽이었던것도 같은데, 아니었던 것도 같다. 걸어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가려고 했지만 그 앞에도 동물들이 있었다.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에 동물을 죽여야만 했다. 죽여야만 했다.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치자에몽에게로 향했다. 공포와 고통, 괴로움, 좌절. 지금까지 돌아다녓지만 처음을 제외하고 우리를 위협한 것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자그마한 사고들과 미쳐버린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이 동물과 대치하는 경우는 넒은 곳이 대부분이었고 그 마저도 싸우기보다는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었다. 물론 그 선택이 전부 하치자에몽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다친 사람도 있으니 피하는 것은 당연했었다.
하지만, 하치자에몽,
지금은..
“이게 무슨 일이야?”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둔탁한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나나마츠 선배, 선배!! 얼마나 그의 이름을 불렀을까 알 수가 없었다. 우리보다 몸이 좋은 사람에 의해서 막혀 열리지 않은 문,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사람들, 제대로 공격을 하기도 전에 우리들은 나나마츠 선배에 의해 옆에 있던 방으로 밀쳐졌고, 처절한 소리만 들었어야 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수많은 동물들의 사체와, 차갑게 식은 나나마츠 선배의 시신이었다. 죽어서까지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동물들이 문을 열 수가 없었다고, 간신히 도망친 사람이 동물들의 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서둘러 무기를 챙기고 와봤더니 대부분은 죽어있고 살아남은 동물조차 거의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사부로는 나직히 하나하나, 똑바로 말 했다.
가만히 서 있은 채로 듣고 있던 하치자에몽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당호아해 그에게 다가가면 그의 손이 허겁지겁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그가 집어든 것은 산지로가 키우는 강아지가 치고 있던 개목걸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골프를 집어들어 눈 앞에 있는 생물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어딘가 홀려있어 여기에 정신이 없는 사람과도 같았다. 라이조가 하치, 그만해. 그렇게 말해도 듣지를 않았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나나마츠 선배가 죽은 뒤의 일이엇고, 라이조와 사부로가 그를 말리는 것을 그만둔 것은 타치바나 선배와 케마 선배가 실종된 이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실종은 나나마츠 선배의 죽음과 그리 길지 않은 채 일어났다.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미쳐버린 사람들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는 도중에 헤어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때 케마 선배의 부축을 타치바나 선배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같이 사라지게 되었다. 시오에 선배는 낮게 욕을 읊조리는 일이 많아졌고, 나카자이케 선배는 혼자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하치자에몽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나마츠 선배와 우리 둘은 거의 같이 밖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모아오는 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딘가 지친 듯한 하치자에몽은 나를 볼 때마다 살아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듯 웃었다. 동료애? 알 수가 없었다. 같이 나나마츠 선배의 희생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이유였을까.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하치자에몽은 나에게 너는 날 동정하지 않잖아. 그 말만을 반복했다.
“후와.”
어느덧 그렇게 두 사람이 실종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나카자이케 선배가 나직히 라이조를 부르고 데려갔고 나와 헤이스케는 호기심에 져서 그 두 사람을 따라갔다. 우리를 발견한 나카자이케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후와, 망설이지 마.”
선배는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라이조와 헤이스케가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 거 같은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을 때 내 시선은 밖을 향했다.
미쳤다. 이 것이 지옥이 아니면 뭐가 지옥이겠어.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미쳐버린 인간들이 수 많은 무기와 불을 들고 이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내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 지금당장 도망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영문은 모르지만 위험한 상황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대로 밖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부로의 말에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치자에몽과 라이조, 나카자이케 선배가 없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멈추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세 사람을 찾기로 했다. 미쳐버린 사람들이 지나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문이 열리고 하치자에몽과 라이조가 나왔다. 어딘가 멍해진 듯한 라이조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자 라이조는 우리를 향해 달려와 꼭 끌어안았다.
“라이조? 왜그래?”
라이조는 우리를 안은 채 울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를 내어 울지 못 한 채로 그대로 목소리를 억누르며 울고 있었다. 사부로와 헤이스케가 라이조의 상태를 살펴볼 때 나와 시오에 선배의 시선은 하치자에몽에게로 향했다. 하치자에몽은 조심히, 그리고 또 서글프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을, 공격을.. 못 해서, 나카자이케 선배가.. 대신..”
이 사람들은 얼마나 우리를 죽이고 싶은 걸까. 나는 말 없이 라이조를 안아주며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만 반복했다.
건물을 하나 찾게 되었다. 낡았지만 이 주변에 오면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이 곳을 잠시간의 안식처로 삼기로 했다. 시오에 선배는 우리들보고 이 곳에서 잘 숨어 있으라고 전한 다음에 실종된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밖으로 떠났다. 우리들은 그렇게 기약없는 기다림을 그 곳에서 보내기로 했다.
“잠깐 주변을 탐색하자. 숨어있으라고 했지만 굶어 죽으라는 소리는 안 했잖아.”
시오에 선배가 우리들을 이 곳에 숨겨 놓고 떠난지 일주일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우리들은 짐을 숨겨놓은 채로 밖을 돌아보기로 했다. 시오에 선배가 실종된 두 사람을 찾아오면 먹을 것이 많이 필요할 거라고 누군가 말을 꺼냈다. 이럴 때에 그런 희망적인 말은 필요하겠지만, 지금 그 말은 누가했을까. 우리들은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고기 손질용 칼을 들고 있었다.
“미친 달려!”
동물을 만나서 도망치는 일 보다 사람을 만나서 도망치는 일이 더 무서웠다. 죽이는 것 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언제부터, 우리들의 곁에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우리들은 한 방에 들어가 숨기로 했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우리를 찾고 있었다. 있지, 어디에 있어? 나랑 놀자. 나 심심해. 나즉히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는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소리가 멀어지는 듯 싶더니 다시 크게 들려왔다 이 사람 우리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고 있었다. 도망가야 한다. 죽여야 산다, 움직이려고 할 때에 무언가 발치에 걸려 시선을 내렸다.
“..-!”
입을 막고 간신히 소리를 지르는 것을 참을 수 있었다. 주변에는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 시체들은 전부 동물에 의해 생긴 시체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도륙이 난 시체들이었다. 그 사람, 아니 그 사람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최소 한 명, 최대 열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 있었다. 대체 왜? 그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카, 칸에몽..”
문이 열리는 것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그 사람을 피해 도망가야만 했다. 그 사람이 내리친 칼이 팔에 스쳤다. 상처가 깊어 피를 뚝뚝 흘린 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죽는 것이 무서웠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인한 죽음에서도 똑같이 느껴졌을까. 지금까지 지나친 수 많은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죽는다. 죽는다. 저 사람은 나를 죽이려 들고 있다.
“칸에몽!!”
“헤이스케, 넌 냉정하고 실력도 좋으니까 괜찮을거야. 그렇지? 사부로 좀 도와줘. 걔 책임지기 싫어하면서 다 책임지려고 하잖아”
“칸에몽”
“하치자에몽이랑 라이조한테도 말 좀 많이 걸어줘. 개네 지금 제정신 아닌거 알고 있잖아. 말 많이 걸고, 오래 같이 있어줘. 괜찮을거야. 어떤 녀석들인데. 잘 살아남을 거야.”
“칸에,”
“헤이스케. 넌 죽지마.”
그 뒤에 심한 격통이 느껴지고 내 세상은 충격에 빠진 친구들의 표정으로 끝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