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타치바나 센조 & 아야베 키하치로
파랑 @nin_ph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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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등장. 히어로처럼 나타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끝난 좀비 사태. 남은 사람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덮이는 책 표지.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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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베, 의뢰. 요 앞 아파트 406호. ‘엉터리’야.”
“응.”
무미건조한 대화. 나는 늘 쓰는 도구들이 담긴 가방을 챙긴다. ‘엉터리’는 우리끼리의 암호다. 좀비 사태로 인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국가의 피해 보상을 받은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엉터리’가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모두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생존자다. 흔히 말하는 좀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다. 사실 좀비 사태 자체는 별 거 아니었다. 좀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이미 포화 상태였고, 다들 그런 영화에서 본 건 있어서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잘 살아남았다. 문제는 살아남은 다음이었다. 정부에는 이 좀비 사태를 끝낼 의무와 책임이 있었고, 어떻게 잘 처리한 뒤에도 자신들은 떳떳해야 했으며, 동시에 정부로서 존재해야 했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좀비에 대해 사살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신체의 훼손이 심하며, 이성을 잃고 공격성이 두드러진 인간’이라고 좀비를 정의한 후 군대를 동원해 구석구석을 청소해댔다. 문제는 이 정의였다. 백 보 양보해서 살기 위해 좀비를 죽인 건 그렇다 쳐도, 좀비를 죽인 시점에서 ‘이성을 잃은’과, ‘공격성이 두드러진’ 이라는 가장 중요한 정의가 모두 부정당해버린 것이다. 죽은 순간 그는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며, 결론적으로 살기 위해 좀비를 죽인 사람들은 모두 살인마가 되었다. 좀비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으니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전에 이 사람이 자신이 좀비가 되면 죽여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울부짖던 사람도, 좀비로 남길 바에야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는 사람도 모두 살인마. 그리고 그런 살인마들은 국가의 피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처음부터 보상 같은 건 해줄 마음도 없었던 거지. 같이 이 일을 시작한 선배가 컴퓨터로 뉴스를 뒤적거리며 투덜거렸다.
“백신 회사 주식은 아직도 그대로야?”
“묻지 마라, 갑갑하니까.”
“그러니까 괜한 투자하지 말라니까. 안 나올 거라고.”
“일이나 가라.” “다녀올게.”
“그래.”
‘정부는 백신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TV에서 그 소리를 듣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 가장 유명한 제약회사의 주식을 왕창 사놓은 같이 일하는 동료는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백신이 나오는지 아닌지 새로 고침을 하고 있었다. 나는 406호로 향한다. 문을 두드리며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한다. 미리 맞춰놓은 암호다. 안쪽에서 한참 찰칵거리며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된 후로는 드물지 않은 경우다. 안쪽에서 창백한 낯빛의 남자가 문을 조금 열며 들어오세요, 라고 말한다. 좁지는 않은 집. 썩은 냄새도 그렇게 심하지 않다. 편한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젊으시네요, 라던가 집에 대접할 게 없어서 죄송합니다, 같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나를 관찰하는 눈치였지만 딱히 불쾌하지는 않다. 나도 그를 관찰하고 있으니까. 그러다 어느 방 앞에서 멈춰 섰다. 현관문보다 자물쇠가 많이 달린 방 안에서 목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벽에 기대놓은 장갑 같은 것을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넸다. 맹견 따위를 훈련시킬 때 쓰는 보호구다.
“관계는요?”
“친구요…. 일단 묶어는 놨는데…, 이건 혹시나 몰라서…. 아무튼 열게요.”
“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서 부르신 거죠?”
“네…. 그…, 처리를 도와주신다고….”
“네, 뭐.”
남자가 문을 열자 썩은 내가 확 퍼져 얼굴을 찡그렸다.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좀비. 널브러진 건 어디 고깃집에서 공수해 온 것 같은 곱창 같은 것. 비둘기 깃털 같은 것도 있고, 살은 없지만 성인 남성의 뼈 같은 것도 굴러다닌다.
“보시겠어요? 아니면 나가 계시겠어요?”
“…되도록 방해 안 되는 쪽에서 보고 있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럼.”
나는 들고 온 가방에서 묵직한 삽을 꺼낸다. 그리고 좀비에게 가까이 간다. 이 좀비는 이미 회생조차 불가능하다. 아직 백신은 없지만, 만약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그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지. 그냥 모르는 채로 있어주었으면, 그렇게 바라며 높이 치켜든 삽으로 머리를 내리친다. 수 십 번 반복하자 다 썩어빠진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진다.
“끝났습니다.”
얼굴에 튄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이야기한다. 이제는 정말 무덤덤해졌다. 처음에는 처리하기도 전에 울어버려서 의뢰인이 되려 당황하기도 했는데.
“…아, 네. 감사합니다. 그, 돈은….”
“현금으로만 받고 있어서요. 여기서 지불해주세요.”
“아, 네. 금방 가져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남자가 안쪽 방으로 사라졌다가 금방 나왔다. 손에 꼬깃꼬깃한 지폐다발을 쥐고 있다.
“여기요. 봉투가 없어서….”
“상관없어요. 감사합니다.”
“저기, 시신은….”
“제가 가지고 가서 묻을 겁니다. 다행히 부피가 작은 편이라 쉽게 옮길 수 있겠어요.”
“네….”
가방에서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구겨 넣는다. 처음에야 구역질이 났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뭐든지 처음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덜덜 떨며 내가 시체를 처리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비위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도 대충 고개를 까딱하고 아파트를 뒤로 한다.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 같은 건 궁금해 하지 않겠지. 이 집에 사실은 세 명이 살고 있었던 것도, 그 중 한 명이 이 좀비에게 먹힌 것도. 그리고 그 좀비에게 먹을 것을 집어넣어주던 창백한 남자도, 먹을 게 없어지자 제 살을 뜯어먹은 좀비가 된 남자도. 아무도 그들을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집에서 나가고, 이 남자가 스스로 가지고 있던 불법 총기로 자기 머리를 날려버린다고 해도, 아무도 그들의 부재를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은 모두 잊히고, ‘엉터리’ 같은 속어로 불리면서, 그럼에도 살고 있다. 혹은 죽었거나. 문을 닫고 아파트 밖으로 내려오자, 4층쯤에서 총소리가 났다. 별로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다음 일이 들어왔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딘데?”
“무슨 산이라는데, 나 말고 일하러 오는 분이 직접 전화 달래. 여기 번호.”
“산?”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아들고서 나는 혀를 찬다. 보통 이런 경우는 무척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까 그 남자도, 그 집이 자기 집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디 아파트라도 찾아 내려와 있는 녀석들이면 양호한 편이다. 산 깊숙한 곳에는 아직 나라가 처리하지 못하는 좀비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무엇보다 산속이면 좀비가 도망쳤을 경우에 잡기가 귀찮아진다.
“이거 그냥 거절하면 안 돼?”
“이미 선불로 돈을 보내와서 가야 돼. 별 일 아니잖아. 그냥 처리하고 오기만 하면 돼. 간단하잖아.”
가방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의뢰주신 분이시죠?” 하고 운을 띄우자, 휴대전화 건너편에서 크게 한숨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느 장소를 지정해준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알아보기 쉽게 빨간 외투를 걸치고 있겠다고 했다.
“네, 그럼 한 30분 정도 걸리니까 기다려주세요.”
걱정과는 다르게 말투는 오히려 신사적인 편이고, 정말 별 일이 아닐 지도 모르겠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까 아파트에서 회수한 시체를 트렁크에 집어넣고 차를 몰았다. 기왕 산에 가는 김에 이것도 묻어버리자. 별 일 아니겠지. 늘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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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울창한 곳에 자동차를 숨기듯이 주차하고, 시체가 들어있는 비닐봉지와 큰 삽을 챙긴다. 올라가는 길에 시체를 처리하기로 했다. 대충 파헤쳐진 흔적이나 싸운 흔적이 없는 곳에 구멍을 판다. 처음에는 사람…, 좀비…? 아무튼, 그것들을 쳐서 죽이는 것보다, 이 작업이 더 무서웠다. 정말로 그 사람을 죽여 버렸다는 걸 실감하게 되니까. 같이 일하는 동료는 늘 별 일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냐며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는다. 이제는 별 일 아니게 되었으니까. 지금 이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건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냥 살덩이에 불과하다. 고기. 먹지 못하게 된 생고기 정도라고 생각하자.
구멍 주위에 나뭇잎을 뿌리고 산 중턱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빨간 외투가 보여 손을 흔들었다. 전화를 걸어 지금 보이고 있는 게 본인이 맞느냐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도 좀비 사태의 생존자일 텐데, 어쩐지 혼자 좀비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온 느낌.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저기요, 라고 말을 붙인다.
“아, 죄송합니다. 연락주신 분 맞으시죠?”
“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서 부르신 거죠?”
“네.”
붙임성이 없는 건지 긴장한 건지, 죄 짧은 대답이다. 눈썹 하나 까딱 않던 사람이 “그래서 뭘 처리해드릴까요?” 라고 묻자 얼굴에 금세 긴장의 빛이 맴돈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발 밑을 가리킨다.
“이 아래에 누가 묻혀있어요.”
“…네? 저기, 이미 죽은 건 저희 담당이 아닌데….”
“아니, 아마 살아있을 거예요. 좀비가 묻혀 있어요. 저랑 아주 친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래에 있는 좀비를 꺼내달라고요?”
“아니요.”
그 남자가 나를 본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묻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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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을 들쳐 맨 채로 잠깐 멍하니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 자기를 묻어달라고 한 거야? 좀비가 묻혀있는 곳에? 나보고 자기를 죽여 달라는 건가? 아니,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그런 뜻이잖아?
“돈은 이미 입금했으니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 아래에 있는 사람은 저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먼저 자기를 묻어달라고 했어요. 저를 공격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라면서. 그래서 다짐했어요. 그 사람이 이 땅 아래에서 죽으면, 저도 같은 곳에 묻히겠다고. 좀비가 된 건 아주 옛날 일이고, 오늘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 지금쯤이면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면 피해 보상금을….”
까지 이야기하고 말을 멈췄다. 좀비가 된 사람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해서 죽였을 경우에는 촉탁 살인죄가 적용되어 피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단 그럼 한 번 파 보겠습니다.”
“네.”
그러자 그 남자가 자리를 비켜준다. 다른 곳보다 부드러운 흙. 이 아래에 묻혀있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문제는 정말 죽었느냐 인데…. 괜찮으려나. 하면서 한 삽을 푹 뜬다. 그렇게 묵묵히 나는 땅을 팠다. 시체도 없는데 시체가 묻기 위해 땅을 판 적은 있어도, 시체가 묻혀 있는 땅을 파는 건 처음이다. 조금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자, 백골이 되어 있는 시체가 한 구 나왔다. 조금 오른쪽으로 치우쳐 파고 있던 건지 오른팔이 툭, 하고 땅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 삭은 밧줄. 스스로를 묶어놓은 건가. 이 사람도 독종이네.
“이 사람이 맞나요? 확인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네, 맞아요. 준비하고 내려갈게요.”
“…저기, 다시 생각해보시죠.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따라서 죽는 건….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도 살아있었어요.”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말라있다. 목소리도 갈라지고. 다만 얼굴만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라가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죠.”
“…그래도….”
백골의 손을 꼭 잡으며 남자가 말을 이어간다. 빼빼 마르고, 하얀 손. 둘 중 무엇이 죽은 사람의 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부탁드려요. 저도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니까.”
구멍 밖으로 나간다. 퍼놓은 흙을 삽에 담고, 한참을 망설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게 뭐가 별 일 아니라는 거야. 완전 별 일이잖아.
“…저기, 이름이라도.”
“네?”
“…원래 이런 거 잘 안 묻지만….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저는 아야베라고 합니다.”
우리는 살인자다. 살아남은 대가로, 평생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감각은 무뎌졌다. 그저 남들이 잘 만지지 못하는 고깃덩이를 처리하는 것 뿐. 그러면서 돈도 버는 아주 쉬운 일. 별 일 아닌 일. 누가 우리를 살인자라고 부른다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정말 살인자가 된다. 사람이었던 것과, 사람을 묻는다. 나는 살인자다.
“이제 곧 죽을 사람 이름을 알아서 뭐에 쓰려고.”
“그래도요.”
“센조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그리고, 뭐라고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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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 나는 일을 관뒀다. 다른 곳에 스카우트 당한 거냐고 끈질기게 묻는 통에 귀찮았다. 그건 아니고 그냥 그만두는 거예요, 라고 다섯 번은 이야기하고서야 풀려났다.
이야기 끝. 행복한 결말은 아니지만 어찌저찌 마무리 된 이야기. 그리고 덮이는 책 표지. 그렇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여기에 살아있는 한은. 살인자가 된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하며 오늘도 살아가야 한다. TV에서는 ‘정부는 백신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라는 기사가 반복된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